스토리

AMD의 역사 – 복돌이에서 라이젠까지

지난주 IT스토리에서는 인텔의 역사에 대해서 다뤄봤습니다. 주로 출시 CPU 위주의 설명이라 정작 기업에 대한 내용은 많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AMD의 역사에서 인텔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이전 포스트를 먼저 읽고 오시는 것을 권장 드립니다.

[링크] 인텔(Intel)의 역사 – x86 시스템의 창시자

그래서 이번에는 AMD가 어떻게 x86 CPU에 대한 생산 라이센스를 획득하게 됐는지, 그리고 인텔과 어떤 식으로 경쟁했는지에 대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목차 ]

  1. 사진으로 인텔을 카피하다
  2. x86 라이센스를 획득하다
  3. 애슬론의 도전과 몰락
  4. 일어나세요, 라이젠이여

[ 1. 사진으로 인텔을 카피하다 ]

AMD(Advanced Micro Devices)는 1969년 제리 샌더스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인텔의 창업자인 로버트 노이스와 쇼클리 반도체,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같이 일했던 동기이기도 한데,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회사를 따로 차리게 됐던 거죠.

하지만 집적 회로 기술을 개발해서 인텔을 설립한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와는 달리, 제리 샌더스는 마케팅 업무도 병행하는 엔지니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AMD의 초창기 시절에는 인텔과 같은 획기적인 기술력이 비교적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1970년대는 AMD가 주로 인텔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수준이었습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인텔이 램 시장에서 성공한 것을 확인한 후 AMD도 동일하게 램 생산에 주력했었죠.​

1975년에는 인텔이 4004, 8008과 같은 CPU를 개발해서 주목받기 시작하자, 해당 프로세서를 개발할 기술력이 부족했던 AMD는 과감하게 인텔의 CPU 디자인을 베껴서 AM9080이라는 칩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AMD가 인텔의 8080 CPU 다이의 사진을 찍어서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AM9080을 디자인했다고 하는데, 요즘같이 미세하고 복잡한 칩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죠.

워낙에 CPU 시장의 수요가 폭발하던 시기라서 AMD도 인텔의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돈을 많이 벌게 됐죠.

[ 2. x86 라이센스를 획득하다 ]

인텔이 1978년에 x86 아키텍처의 시초인 8086 프로세서를 개발하게 됩니다. 이 프로세서는 IBM 컴퓨터의 표준 CPU로 채택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인텔은 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 AMD에게 x86 아키텍처에 대한 라이센스를 제공해서 2차 생산자로 활동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인텔 입장에서는 후회스러운 결정일 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AMD의 x86 생산 권한이 인텔이 독점법 위반에 걸리지 않고 있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인텔도 애초에 라이센스를 제공해주고 싶어 하지는 않았지만 IBM이 인텔과 CPU 공급 계약을 할 때 인텔이 독점적인 지위를 남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차 생산자를 지정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죠. 당시의 IBM도 나름 혜안이 있었나 봅니다.

AMD는 이 라이센스를 바탕으로 1979년부터 반도체 생산 공장을 폭발적으로 증설하기 시작합니다. 인텔은 기존 약속대로 286 CPU까지 다이 설계도까지 AMD에게 제공해줘서 사실상 AMD는 R&D 투자 없이도 공장에서 돈을 찍어낼 수 있게 됐죠.​

하지만 인텔도 1985년에 개발한 386 프로세서부터는 AMD에게 설계도를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AMD는 다시 예전 방식대로 386과 486 프로세서를 역 분해해서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공정이 복잡해질수록 이런 역 분해 방식의 설계는 점점 효율이 떨어지기 시작했죠. 결국 AMD는 x86 라이센스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스스로 CPU 디자인을 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결과 AMD는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인텔의 펜티엄 CPU와 직접적으로 경쟁하게 될 K 시리즈 CPU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인텔의 최상위 펜티엄 시리즈보다는 성능이 조금 떨어졌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합리적인 성능을 제공해서 중저가 PC 시장에서 잠시나마 인텔보다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해냅니다.

[ 3. 애슬론의 도전과 몰락 ]

AMD는 K7 시리즈부터 “애슬론”이라는 모델명을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공격적인 R&D와 개량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2001년에 출시된 애슬론 64는 최초의 64비트 CPU로 출시되면서 처음으로 인텔보다 기술적 우위를 점하게 됐죠.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x86 아키텍처에 대한 특허는 인텔에게 있지만, x86-64비트 확장에 대한 기술 특허는 AMD한테 있습니다. 인텔도 64비트 x86 CPU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AMD의 라이센스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32비트와 64비트 명령어 구조가 다른 점 때문에 윈도우 OS에서도 이런 프로그램들을 별도로 분류하는데, “Program Files” 폴더가 64비트짜리 프로그램 폴더와 32비트짜리 폴더로 별도로 나눠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AMD는 이어서 2005년에 애슬론 X2 프로세서를 출시하면서 최초로 “멀티 코어”라는 개념을 정립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CPU가 다중 코어로 구성된 게 일반적이지만, 당시에는 연산 코어가 1개인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기존에는 단순히 CPU가 얼마나 빠른가를 나타내는 코어 클럭에만 관심이 있었다면, 멀티 코어 개념이 등장한 이후로는 종합적인 연산 능력도 중요시하게 됐죠.

하지만 인텔이 이런 AMD의 움직임에 듀얼 코어 콘로 시리즈로 대응하고 코어 클럭 성능도 앞서기 시작하면서 AMD는 급격하게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합니다. 이 콘로 시리즈는 현재 코어-i 시리즈로 개량돼서 오늘날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죠.

**추가 정보**
인텔이 멀티코어쪽에서 우위를 차지한 주된 이유가 클럭당 처리효율(ipc)가 좋아서였지, 클럭이 높아서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후에 멀티코어 대결에서도 샌디브릿지(4코어)가 투반(6코어)보다 우위였던건 고클럭인 부분도 있었지만, 멀티코어 최적게임부족, 투반의 낮은ipc가 더큰 이유였습니다.
애플론x2 의 첫 상대는 콘로가 아니고 펜티엄d였습니다. 이게 폭망하고 절치부심하여 나온게 코어시리즈고 코어2 시리즈의 콘로가 공전히트를 치면서 amd가 다시굼 시장을 내어줬죠.

AMD는 어떻게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헥사코어, 옥타코어와 같은 다중 코어 CPU로 대응했지만, 당시 게임이나 프로그램들이 그만큼의 다중 코어 연산을 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코어의 개수보다는 코어 자체의 클럭 속도가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코어 클럭 경쟁에서는 인텔이 확실히 우위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AMD의 CPU들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AMD가 시장에서 잠적한 뒤에는 인텔이 다중 코어 제온 CPU들을 전문가 작업용이라는 명목하에 비싸게 판매했던 것을 생각하면 씁쓸한 일이네요.

경쟁에서 뒤처지기 시작하자, 기존에 AMD가 집중적으로 투자했던 반도체 공장 설비들이 적자를 발생시키는 요인이 돼버렸습니다. CPU는 과량으로 생산되고, 판매는 되지 않으니 악성 재고가 쌓이는 악순환이 반복됐던 거죠.​

AMD는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CPU에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하기로 결정합니다. 바로 CPU 칩에 그래픽 프로세서를 통합시키는 APU라는 개념이죠. AMD는 이 그래픽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엔비디아를 인수하려고 시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협상은 결렬되고, AMD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당시 2인자 GPU 회사인 ATI를 인수하기로 결정합니다. AMD는 이 과정에서 무려 54억 달러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는 당시 AMD 가용 자금의 5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고 합니다.

지나치게 과감한 투자, 코어 속도 경쟁에서의 실패, 그리고 악성 재고의 누적 때문에 결국 AMD는 2009년 이후로 새로운 CPU 출시 없이 2017년까지 동면 상태에 접어들게 됩니다.

** 추가정보 **
2009년 이후로도 AMD는 PC용 CPU를 만들어 출시를 했고, 그것이 AMD FX 시리즈입니다. 다만 초기에 페넘 2보다 낮았던 IPC, 부실한 보드들, 8코어를 지원하지 못하는 프로그램들로 인해서 AMD를 나락으로 몰고 간 CPU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AMD는 ATI를 인수한 후에 모바일 프로세서에 사용할 수 있는 GPU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x86 산업에서 밀리기 시작하자 자금 집중이라는 명목하에 모바일 GPU 부서를 매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6500만 달러라는 비교적 헐값에 매각된 이 GPU 부서는 퀄컴 사에서 인수해서 현재까지도 Adreno라는 이름으로 모바일 시장에서 최고의 GPU 대접을 받고 있죠.

[ 4. 일어나세요, 라이젠이여 ]

AMD가 동면기에 들어간 2000년대 후반부터 약 10년 동안은 CPU=인텔이라는 공식이 성립됐습니다. 그동안 AMD는 기존 반도체 공장들을 매각하면서 내부 정비를 하고 있었죠.​

AMD의 반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 바로 2012년에 AMD에 부사장으로 영입된 리사 수(Lisa Su)인데, 라이젠 CPU 출시 때부터는 공식 행사에서도 자주 얼굴을 비춰서 이제는 대중에게도 어느 정도인지도가 생겼죠.

사실 신생 기업을 키우는 것보다 망해가는 기업을 되살리는 게 더 힘들 수도 있는데, 리사 수는 기적적으로 AMD를 다시 살려놓게 됩니다. 리사 수는 이미 경쟁에서 밀려버린 x86 시장에서 시선을 돌려서 엑스박스와 플레이스테이션을 위한 CPU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CPU와 GPU 부서를 동시에 운영하고 그래픽 성능에 치중한 APU를 개발했던 경험이 있는 AMD로써는 최상의 선택이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를 계기로 AMD의 자금 상황은 호전되기 시작하고, 능력을 인정받은 리사 수는 2014년에 AMD의 CEO로 임명됩니다.​

이후 AMD는 다시 x86 CPU 시장에 재진입하기 위해 칼을 갈며 연구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2017년에 현재 CPU 시장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라이젠 시리즈를 발표하게 됐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듯, 라이젠 CPU는 인텔의 고가에 판매하는 제온 시리즈와 맞먹는 코어 개수와 인텔의 주력 코어-i 시리즈에 밀리지 않는 클럭 속도로 무장해서 출시 초반부터 리뷰어들에게 호평을 받게 됩니다.

인텔보다 강력한 내장 그래픽이 장착된 저가형 G 시리즈, 내장 그래픽을 빼고 시원하게 가격을 내린 고성능 X 시리즈 등 AMD의 라이젠은 사용자의 현실적인 니즈를 확실하게 반영한 매력적인 라인업으로 현재도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인텔도 코어-i 9세대부터는 코어 개수를 늘리면서 라이젠에 대응하기 시작했지만, 수년 동안 R&D에 소홀했는지 최근에 10nm 공정 CPU의 생산에 계속해서 차질을 빚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19년에 출시 예정인 라이젠 3세대는 7nm 공정으로 출시될 예정인 것을 감안하면 인텔은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라 해도 되겠네요.

물론 인텔도 썬더볼트, 옵테인 기술과 서버용 장비에 대한 CPU 장악력을 바탕으로 쉽게 경쟁에서 밀릴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이전과 같은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한 가격/스펙 장난질을 치기는 힘들게 됐다는 점은 소비자 입장에서 환영할만한 일이죠.​

과연 2019년 CPU 시장에서 어떤 승부가 펼쳐지게 될지 매우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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