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CEO로 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사 – 2부 : 스티브 발머

시작하기에 앞서 이번 마이크로소프트 스토리 시리즈의 1편인 빌 게이츠에 대한 포스트를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링크]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사 1부 : 빌 게이츠

[링크]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사 3부 : 사티야 나델라

스티브 발머는 창업자인 빌 게이츠를 이어서 2000년에 마이크로소프트(MS)의 2대 CEO로 위임됐습니다. 이후 2006년 까지는 빌 게이츠가 경영에 깊게 관여했지만, 스티브 발머의 지휘 아래 MS는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색을 띠게 됩니다.

스티브 발머의 사업 방향이 성공적이었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재 MS가 “하드웨어의 명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배경에는 스티브 발머의 영향이 적지 않았죠. 결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에게 밀려서 참패를 맛보고 불명예스럽게 MS의 CEO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지만, 개인적으로 발머가 모든 면에서 실패한 인물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발머가 CEO이던 시절 MS의 아이디어들은 모두 큰 틀에서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드웨어 기술력을 확보한 것도, 모바일 사업에 투자한 것도 모두 옳은 결정이었지만 지나치게 기업 고객들에만 집중한 나머지 일반 소비자들에게 소홀했던 것이 큰 패착이었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뭔가 이 시기 MS의 제품들은 잘 만들어지긴 했지만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게 만드는 감각 있는 마케팅이 많이 부족하기도 했죠. 뭔가 그냥 새로운 기능들에 대해서 나열만 하는 홍보 방식이랄까…

큰 맥락은 잘 잡았지만 마무리와 섬세함이 부족했던 스티브 발머. 이번 정기 IT스토리 포스트에서는 빌 게이츠에 이어 그가 CEO였던 2000년~2014년 사이에 MS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에 대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MS 초창기 시절 ]

스티브 발머는 MS의 초대 멤버 중 하나입니다. 학창 시절에 빌 게이츠와 친구 사이였고, 빌 게이츠가 Altair 8800의 운영체제 계약을 따낸 이후 회사의 전반적인 영업 관리를 위해 1980년에 불러들였죠. 그가 입사한 해인 1980년 말에 MS를 성공의 가도로 올려놓게 되는 IBM과의 MS-DOS 계약이 체결되는데, 이 계약을 성사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합니다.

그는 매우 낙천적이고 유쾌한 성격으로 인간관계가 좋았었다고 합니다. MS의 자금 상황이 넉넉하지 않았던 초창기에는 윈도우 1.0의 광고를 스스로 찍기도 했는데, 이 짧은 영상만으로도 그의 성격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광고는 이후 윈도우XP의 비공식 홍보 영상에도 패러디가 되기도 합니다.

당시 애플을 누르고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떠오른 MS의 CEO가 이런 패러디 영상을 찍고 있을 정도니… 담백한 성격인 것은 틀림없네요.

CEO로 임명되기 전까지만 해도 윈도우의 세일즈, 영업 총괄 담당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봐서 영업이 천직이었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 순탄한 시작 ]

스티브 발머가 CEO로 임명된 2000년에는 빌 게이츠의 활약으로 미국 정부와의 독점권 행사에 대한 법정 공방이 마무리돼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윈도우98 이후에 출시된 윈도우들이 최적화 문제로 시달리다가 2001년에 윈도우XP가 호평을 받으면서 주력사업에 대한 불안 문제도 해소되기도 했습니다. 여러모로 빌 게이츠가 멍석을 깔아준 이후에 스티브 발머에게 CEO 바통을 넘기는 모양이었죠.

물론 서열상 당시 MS의 이인자인 스티브 발머가 CEO 자리를 맡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지만 수년간의 법정 공방을 거치면서 경직된 MS의 이미지를 풀어주기 위해서는 격식을 따지지 않는 발머와 같은 수장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겠죠.

그의 행동이 “격식을 차리지 않는” 수준인지, 도를 넘어 “바보스러운” 수준인지는 개인에 따라 평가가 많이 엇갈리긴 합니다. 이 부분은 2000년대 초의 영상을 보면서 스스로 평가해보시는 것이 좋겠네요.

그가 CEO로 활동했던 기간은 2개의 시기로 나눠서 평가해봐야 합니다. 먼저 2000~2008년은 빌 게이츠가 이사회에서 MS이 정책에 깊게 관여하던 시기여서 기존의 MS와 특별히 다른 느낌이 없습니다. 하지만 2009~2014년은 빌 게이츠가 완전히 물러나면서 발머의 색깔이 진하게 나타나게 되죠.

[ 빌 게이츠의 섭정기 ]

2008년 까지는 스티브 발머가 CEO지만 실제 최종 결정권자는 빌 게이츠였습니다. 아마도 마케팅 쪽에서만 활동해서 프로그래밍 배경이 부족했던 발머가 적응하는 기간 동안 빌 게이츠가 보조해주는 형식이었겠지만, 이 당시에 MS의 CEO가 발머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 정도로 빌 게이츠의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졌죠.

중간에 윈도우 비스타가 평이 좋지 못했지만, 윈도우XP와 윈도우7을 거치면서 이제 PC에서의 OS는 MS의 윈도우가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MS 오피스는 여전히 가장 널리 사용되는 문서 편집기였고,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웹브라우저의 강자였죠.

덕분에 MS는 안정적으로 성장하지만 그냥 OS만 찍어내는 지루한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그리고 초창기 개인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OS를 만들겠다는 이념과 달리 이 시기에 MS의 주 고객층은 기업들이었습니다.

일반 소비자들과 멀어지면서 점점 출시되는 제품들이 지루해져 가는 면이 없잖아 있었죠. 하지만 이를 막연히 MS의 탓으로 보기는 애매한 것이, 당시에는 불법 소프트웨어가 판을 치던 시기여서 개인 사용자에게 정품 윈도우를 판매하기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돈 되는 시장에 치중하는 수밖에…

하지만 이 시기에 애플에게 일반 소비자 시장 점유율을 잠식당하면서 “다자인, 편집 작업은 MacOS가 좋다”라는 인식이 생겨버리게 됩니다. 이 상황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어서 MS가 일반 소비자 시장을 무시한 대가를 아직도 치르는 중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당시에 발머는 획일화된 윈도우와 MS오피스 위주의 수입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는 주로 새로운 하드웨어에 관심이 많았는데, 아직까지도 메이저한 콘솔 게임기인 엑스박스의 개발도 발머의 주도 하에 진행됐었다고 합니다.

빌 게이츠가 2008년부터는 MS의 정책적인 부분에 손을 때기로 하면서 발머의 하드웨어 시장 도전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는데, 종합해서 평가하자면 절반의 성공, 혹은 절반의 실패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 마이크로하드?! ]

소프트웨어를 개발에 주력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름과는 달리 2008년 이후로 발머는 새로운 하드웨어 개발에 전념하게 됩니다. 실패한 기기들이 많아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사실 2008~2012년도는 모바일 시장에서 애플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시기여서 억울한 감도 없잖아 있긴 합니다.

엑스박스의 성공과 발머의 전폭적인 지지로 MS에서도 아이팟과 경쟁하기 위해서 2006년에 준(Zune) 플레이어를 출시하는데, 기능적으로는 꽤나 괜찮은 완성도를 보여주면서 출시 초기에는 호평을 받았지만 이미 굳건한 생태계를 구축한 아이팟의 벽을 넘지 못하고 그대로 사장되어버립니다.

발머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하드웨어가 바로 “휴대폰”인데, 그는 아이폰이 나오기 한참 전부터 “스마트”한 휴대폰을 만들기 위해 많은 투자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상 고객이 기업이어서 이쁘고 직관적인 기기보다는 실용적이고 기능이 많은 기기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게 되죠. 애플과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스마트폰 개발이 시작됐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 때문인지 초창기 윈도우 스마트 기기들은 디지털 펜과 물리 키보드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이게 됩니다. 발머도 아이폰 출시 당시에 “펜이 없는 스마트 기기를 누가 제대로 활용하겠냐”라고 비판했다고 하네요. 물론 그가 한참 틀렸다는 것이 곧 밝혀지긴 했지만…

엑스박스 제품군에서도 키넥트라는 동작인식 기반의 컨트롤러를 출시했었는데, 기술력은 가상하지만 실제 사용할 때에는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아서 엄청난 비판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나마 키넥트는 사장됐지만 당시에 개발했던 모션인식 기술이 현재 VR에 활용되고 있다고 하니까 완전히 허사는 아니긴 하네요.

이처럼 뭔가 제품들의 아이디어는 좋지만 그 아이디어들을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풀어나가는 섬세함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 전반적으로 나는 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전 개인적으로 윈도우만 찍어내던 지루한 MS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습이 결국 현재 MS의 모던한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 윈도우폰의 참패 ]

스티브 발머가 CEO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입니다. 그는 모바일 시장을 의식해서 2012년에 출시한 윈도우8을 모바일 인터페이스 위주로 개발했는데, 주력 소비자층인 PC 사용자들의 반발이 엄청났었습니다.

무엇보다 “시작” 버튼이 사라져서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마치 태블릿을 보는 듯한 라이브 타일 메뉴는 PC 화면에서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결국 윈도우8은 처참한 성적과 함께 2015년에 윈도우10이 출시되면서 잊혀지게 됩니다. 물론 MS가 과거에도 말아먹은 윈도우 버전이 몇 개 더 있지만, 윈도우8은 기존의 버전들에 비해 너무나 변화가 많아서 더 집중적인 포화를 맞지 않았나 싶네요.

당시에 저도 윈도우8에 적응해보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론은 “익숙해지면 나름 사용 가능하지만 불편하다”입니다. 태블릿 인터페이스에서는 나름 강점이 조금 있지만 모바일용 앱의 부족과 윈도우 태블릿의 보급화 실패로 인해 의미가 많이 퇴색된 것이 안타깝네요.

윈도우8은 그나마 타협이 가능한 실패인 반면, 윈도우 스마트폰은 정말 변호해주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참패입니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초창기 윈도우 스마트폰들은 사무 용도의 기능이 강조됐는데, 시장의 선택은 결국 직관적인 아이폰이었죠.

이에 대응하기 위해 MS는 2011년에 과거에 휴대폰 제조업으로 명성을 날렸던 노키아를 인수하면서 루미아라는 독자적인 윈도우 스마트폰 브랜드를 만들게 됩니다.

하지만 2011년이면 늦어도 한참 늦은 시기죠. 이미 모든 앱 생태계는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위주로 구축되어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개발자가 굳이 윈도우 모바일 전용 앱을 개발할 동기가 부족해서 윈도우 스마트폰은 쓸만한 앱이 부족하다는 고질적인 문제를 계속 안고 가게 됩니다.

아무리 폰이 좋아도 쓸만한 앱이 없으면 무용지물인데, 윈도우 스마트폰이 딱 그꼴이었습니다. 발머가 아이폰 런칭 초기에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빠르게 대응했으면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겠죠.

노키아의 인수와 윈도우 스마트폰의 실패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무려 80억 달러(한화 약 8.8조 원)에 달하는 누적 손실을 입었다고 합니다. 액수가 실로 어마 무시하군요.

[링크] 윈도우폰은 왜 망했을까?

이로 인해 스티브 발머는 2014년에 CEO 자리를 사티야 나델라에게 물려주면서 씁쓸하게 퇴장합니다. 현재 발머는 NBA의 LA Clippers 농구 구단을 사들여서 열심히 취미활동 중이라고 합니다.

[ 스티브 발머에 대한 평가 ]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CEO인 만큼 평가가 고울 리는 없습니다. 아무리 MS라 하더라도 80억 달러는 적은 돈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 그가 바보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낙천적인 성격 때문에 “잘 될거야”라는 마인드로 무모한 도전을 많이 했던 것이 가장 큰 패착이지만 그 도전들로 인해 현재 MS의 엑스박스, 서피스가 탄생한 것이기도 하죠.

그리고 MS 내부적으로도 결속력을 다져준 좋은 리더였다고 하네요. 과거 MS는 개발 부서마다 경쟁적인 구도였는데, 발머의 지휘 하에 협업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사내 분위기도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합니다. 현재 사티야 나델라 CEO의 모던한 감성도 이런 개발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으면 발휘하기 힘들었겠죠.

비록 CEO로는 평가가 엇갈리겠지만, 발머가 인간적으로는 좋은 사람이었던 것은 맞을 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구글에서 “발머가 찡그리는 모습”으로 검색해도 그가 인상 쓰는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저에게는 힘들 때에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던 괴짜 아저씨로 기억에 쭉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드디어 현재 CEO인 사티야 나델라의 차례네요. 다음 주에는 “CEO로 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사” 마지막 3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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