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CEO로 보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사 – 1부 : 빌 게이츠

1970년대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최대 부흥기였습니다. 그 유명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창업한 것도 이 시기였죠. 스티브 잡스와 함께 드라마틱한 성장과 몰락, 그리도 기적적인 부흥을 거쳐서 현재 세계 시가총액 1위의 기업이 된 애플의 역사는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런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비교적 지루하고 경직된 이미지가 더 강합니다. 그나마 최근에는 서피스 시리즈로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지긴 하지만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드라마틱 하다는 애플의 역사도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을 제외하고 생각해보면 그저 그런 지루한 기업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는 대중에게 다가가기보다는 뒤에서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에 비교적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적어 보일 뿐이죠.

하지만 언제나 여유롭게 선발주자의 후광을 누리는 이미지와는 달리, 마이크로소프트도 그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왔고, 그 이야기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기업의 역사에 대한 얘기만 하면 재미가 없으니, 역대 마이크로소프트의 CEO와 엮어서 연대별로 풀어나가볼까 합니다.

1부) 빌 게이츠 (1975~2000)

2부) 스티브 발머 (2000~2014)

3부) 사티야 나델라 (2014~현재)

보시다시피 3부작으로 기획했고, 주 1회씩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 대책 없는 창업 ]

빌 게이츠 하면 떠오르는 게 뭘까요? “세계에서 제일 가는 부호”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이자 CEO”와 같은 신사적인 사업가 이미지가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빌 게이츠도 젊은 시절에는 그 누구보다도 다혈질이고 괴짜였다고 합니다.

어릴 때에는 Computer Central Corporation(CCC)라는 기업의 컴퓨터를 해킹해서 개인적으로 사용하다 붙잡힌 경력도 있고 과속, 난폭운전으로 수차례 벌금을 물고 입건되기까지 하는 등 절대 얌전한 사람은 아니었죠.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한 계기 자체도 “잘되면 좋고 아니면 복학하지 뭐”라는 생각이었다고 하니 어찌 보면 상당히 대책 없긴 했습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는 회사로 키우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1970년대에 호평받던 Altair 8800이라는 컴퓨터를 위한 운영체제를 팔기 위해 임시로 만든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Altair 8800은 기능적으로 혁신적이었지만 스위치 버튼과 전구로 구성된 인터페이스를 일반 소비자가 구동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었죠. 그래서 빌 게이츠는 일반 소비자가 Altair 8800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해주는 프로그램인 베이직(Basic)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제안하게 됩니다.

회사 이름도 Micro computer를 위한 Software를 개발한다는 의미라고 하니, 애초에 그 프로젝트에 올인하기 위한 작명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애플이 대중에게 컴퓨터를 보급하기 위해 컴퓨터를 직접 만든 회사라면, 마이크로소프트는 대중이 기존의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를 만든 회사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의도는 같지만 접근 방향이 완전히 다른 셈이죠.

[ 애플과의 엇갈린 운명 ]

Altair 8800과의 운영체제 계약이 성공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도 제법 회사다운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애플 컴퓨터 II가 출시되면서 개인 컴퓨터 시장에 지각변동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죠.

사실 애플에서도 처음 컴퓨터를 설계하는 도중 OS(운영체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MS에 연락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애플 컴퓨터 II가 대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그런 자잘한 계약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지자 자연스럽게 무산되버렸죠.

물론 MS와 애플이 한 회사로 합쳐져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MS가 애플과 계약을 했으면 아마도 그대로 흡수되버렸을 가능성도 있었겠네요.

[ 역사적인 계약 : MS-DOS ]

컴퓨터는 기업이 사용하는 도구라는 인식과 달리, 애플이 개인용 애플 컴퓨터 II로 대성공하게 되자 당시 가장 큰 컴퓨터 기업인 IBM에서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전 Altair 8800과 마찬가지로 일반 소비자가 쉽게 사용할 인터페이스를 개발하지 못하고 있었죠. 이를 감지한 빌 게이츠가 적극적으로 IBM을 설득해서 OS를 공급하는 계약을 따내게 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빌 게이츠가 IBM을 설득할 때 “거의 완성 단계”의 OS가 준비돼있다고 했는데, 사실 계약 당시만 해도 프로그래밍을 시작도 안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있지도 않은 물건을 팔은 셈이니 어찌 보면 사기라고 해도 무방하죠. 빌 게이츠의 무모한 성격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네요.

하지만 기적적으로 약속한 기간 내에 MS는 IBM에게 완성된 OS를 공급하는데 성공하게 되는데, 이 OS가 바로 그 유명한 MS-DOS입니다.

원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특정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이라 지금 기준으로 보면 원시적이라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당시에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로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혁신적이었습니다.

특이하게도 빌 게이츠는 IBM과 계약 당시 MS-DOS라는 저작권을 팔아넘긴 것이 아니라 컴퓨터에 MS-DOS를 설치할 때마다 일정 커미션을 받는 라이선싱 방식의 계약을 요구했는데, 당시 IBM은 소프트웨어의 지적 재산권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지 이 조건을 수락해줍니다.

하기야 당시의 IBM도 MS-DOS가 이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겠죠. 소프트웨어 라이선싱이라는 개념도 제대로 정립되기 전이기도 하고요.

이후 애플의 차세대 컴퓨터인 LISA 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은 서서히 IBM이 장악하게 되고, 그에 따라 MS-DOS의 인기도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가게 됩니다.

[ 희대의 뒤통수 : Windows ]

애플 컴퓨터 II의 성공 이후 스티브 잡스는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한 LISA 컴퓨터의 개발에 매진하게 됩니다. 텍스트 명령어 기반인 MS-DOS와 달리 그래픽 인터페이스는 마우스로 클릭하기만 해도 원하는 작업을 실행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시스템이었죠.

1999년도 영화인 “실리콘밸리의 신화”에 LISA 컴퓨터를 본 빌 게이츠의 반응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대략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빌 : 우리도 리사 컴퓨터와 같은 OS를 만들어야 한다고!

발머 : 아무리 그래도 애플이 개발한 것을 우리가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는 없지 않냐?

빌 : 이봐, 그딴건 중요한게 아니야. 우리도 이런걸 만들어야 한다고!

이후 애플의 내부적인 문제로 LISA 프로젝트는 중단되지만, 잡스는 매킨토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동일한 개발을 지속합니다.

잡스가 매킨토시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고 있음을 감지한 빌 게이츠는 먼저 그에게 접근해서 매킨토시를 위한 그래픽 인터페이스 개발에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당시에 잡스도 애플 내에서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꼭 성공시켜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빌 게이츠의 제안을 뿌리치기 힘들었는지, 이 협업 관계는 결국 성사됩니다.

이 계기로 MS는 OS 개발 연구를 위해 당시 극비 보안이던 매킨토시 프로토타입을 입수할 수 있게 됐는데, 이 프로토타입을 이용해서 애플을 위해 OS를 개량해주는 한편, 뒤에서는 인터페이스와 소스를 연구해서 독자적인 OS를 개발하게 됩니다.

이렇게 탄생하게 된 MS의 차세대 OS가 바로 그 유명한 윈도우입니다.

빌 게이츠의 행동에 대한 윤리적인 판단은 많이 엇갈리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겉보기와 달리 엄청난 야망과 집념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매킨토시는 개발에 너무 많은 자금이 소모돼서 어쩔 수 없이 비싸게 판매됐는데, 저렴한 윈도우라는 대안이 있었기 때문에 야심찬 출시와 대조적으로 저조한 판매 실적을 보이게 됩니다. 이로 인해 결국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나게 되죠.

[ OS의 혁명 : Windows 95 ]

윈도우는 그 이후에도 꾸준히 개량됐는데, 초창기 1.0버전은 매킨토시 OS와 유사한 부분이 많지만 갈수록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1995년도에 완전히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출시된 윈도우95는 향후 출시되는 모든 컴퓨터용 OS의 기본적인 틀을 정립할 정도로 혁신적이었습니다. 저도 처음 윈도우95를 사용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진정 차세대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죠.

조금 투박해 보이긴 하지만 인터페이스의 큰 틀은 오늘날에 사용하는 윈도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기본적인 틀을 잘 잡아놨다는 소리겠죠.

추가로 윈도우의 버전과 개발 역사에 대해서 나열하자면 별도의 장문 포스트가 필요할 것 같으니 아쉽지만 조금(많이) 생략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위기에 빠진 애플을 구해주다 ]

스티브 잡스가 쫓겨난 이후로 애플은 소비자에게 어필할만한 상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급격한 경영난에 빠지게 됩니다. 1997년에 애플은 구원 투수로 스티브 잡스를 다시 불러들이게 되는데, 당시 애플의 상황은 아무리 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도 어찌 손을 써볼 방법이 없을 정도로 자금난이 심각했다고 합니다.

이때 도움의 손길을 뻗은 사람이 다름 아닌 MS의 빌 게이츠였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복귀를 가장 경계해야 하는 인물이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조금 의외이기 하죠.

MS는 스티브 잡스의 복귀와 함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애플의 주식 1억 5천만 달러어치를 매수하면서 3년 동안 이 주식을 절대로 팔지도 않고 경영에 간섭하지도 않겠다는 파격적인 딜을 합니다. 사실 거의 후원이나 다름없는데, 이런 행동에 대해서 당시에 여러 가지 해석이 있었습니다.

빌 게이츠가 스티브 잡스한테 과거 매킨토시를 베낀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MS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MS 오피스를 MacOS에 기본 장착 시키기 위한 거래다, 기회를 봐서 애플의 지분은 통째로 흡수하려는 초석이다, 등등…

하지만 빌 게이츠는 단순히 감정적인 이유만으로 가장 큰 경쟁사인 애플을 파산에서 구원해줄 정도로 녹록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이 투자의 진짜 이유는 바로 다음 해인 1998년에 있었던 미국 법원과 MS의 독과점 법정 공방을 대비하기 위한 초석이었던 거죠.

윈도우95의 성공 이후 MS는 컴퓨터의 운영체제를 독점하고 있다는 지위를 이용해서 자사 제품인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MS 오피스를 사용하게 유도하고 타 소프트웨어 회사의 제품의 시장 진입을 의도적으로 방해한다는 비난을 받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2차적 소프트웨어에 대한 독과점 판결을 받고 윈도우에 기본적으로 인터넷 익스플로러나 미디어 플레이어를 설치하지 않은 상태로 출시하기도 했고요.

그나마 1998년 법정 공방이 열리기 전에 MS가 다른 IT 회사에 묻지마 투자를 하면서 “상생을 추구하는 기업” 이미지를 심어둔 덕에 당시 회사가 분열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1차 판결에서는 MS를 OS 회사, 소프트웨어 회사 2개로 분리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는데, 이후에 빌 게이츠의 청원으로 인해 벌금형으로 마무리됩니다.

이후 빌 게이츠는 2000년에 CEO 자리를 초대 멤버인 스티브 발머에게 내주면서 경영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 빌 게이츠에 대한 평가 ]

자세히 보면 빌 게이츠도 스티브 잡스 못지않게 다혈질이고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성격은 비슷할지언정, 스티브 잡스는 감성에 치우친 사람이고, 빌 게이츠는 이성에 치우친 사람이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지 않나 싶네요.

특히 매킨토시와 윈도우의 일화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바를 위해 장기적인 전략을 세운 후 참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죠.

스티브 잡스처럼 화려한 무용담은 부족하지만 전체적인 업계의 흐름을 파악하고 본인에게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면서도 필요할 때에는 무모할 정도로 결단력 있는 행동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실속 있는” 영웅이 아니었나 싶네요.

빌 게이츠가 남을 기만하고 경쟁자를 짓밟는 악독한 기업가였지 않냐고 할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는 치열했던 실리콘밸리의 태동기에 본인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것이 아닐까 싶네요. 사실 애플 컴퓨터 II 시기에 애플이 먼저 MS와의 협업을 파토 냈던 거니까요…

빌 게이츠는 왕성하게 활동하던 90년대 중반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비행기를 탈 때 이코노미 좌석을 이용할 정도로 검소했으며, 은퇴 이후에도 본인이 설립한 자선 단체인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운영에 몰두하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가 지금까지 납부한 세금만 해도 60억 달러 이상인데, 여전히 부자들의 증세를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하네요. 심지어 사후에는 그의 전 재산인 100억 달러 전액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약속했다고 합니다.

MS의 역사와 현재의 모바일 정책에 관해서 간단히 다루려 했는데 빌 게이츠 시대에 대한 얘기만으로도 충분히 포스트가 길어지는 거 같아서 결국은 3부작으로 나누게 됐네요.

대중에게 잘 알려진 스티브 잡스와 달리 빌 게이츠는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는 편인데, 이번 포스트를 통해서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도 결코 천운으로 벼락부자가 된 졸부가 아니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다음 주 IT 스토리 포스트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초대 멤버이자 2000~2014년 동안 CEO를 맡았던 스티브 발머라는 인물과 모바일 시장에서의 행보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바라며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항상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링크]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사 2부 : 스티브 발머

[링크]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사 3부 : 사티야 나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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